몰입초대석 |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 — 나용수 교수의 핵융합 강연
"저 태양을 지구에 만들어야지."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허무맹랑하게 들리시겠지만, 실제로 이 생각을 붙들고 평생을 몰입해 온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몰입아카데미는 몰입초대석에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나용수 교수님을 모시고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핵융합 발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같은 제목의 저서를 바탕으로, 핵융합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몰입하며 답을 찾아왔는지를 몰입클럽 회원분들께 들려주셨습니다. 그 핵심을 정리해 소개합니다.
핵융합이란? 별의 에너지에서 시작된 질문
밤하늘의 별과 태양은 도대체 어디서 저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 걸까요. 뉴턴도 맥스웰도 풀지 못했던 이 질문은 1905년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공식, E=mc²가 등장하고 나서야 설명됩니다.
강연 내용에 따르면 원리는 이렇습니다. 수소의 친척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 헬륨과 중성자가 만들어지는데, 반응 전후의 질량을 재보면 아주 조금 줄어 있습니다. 이 사라진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만큼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핵융합의 기본 원리입니다. 태양은 지금도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며 질량 결손만큼의 에너지를 내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안타깝게도 인류가 이 원리를 처음 쓴 곳은 수소폭탄이었지만, 과학자들은 곧 "어떻게 평화적으로 이용할까"라는 질문으로 방향을 돌렸고 여기서 핵융합 발전 연구가 시작됩니다.
바닷물로 50년 쓸 전기 — 핵융합 발전의 효율
핵융합 발전이 왜 '꿈의 에너지'라 불리는지, 나용수 교수님은 인상적인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노트북 배터리에서 리튬을 조금 빼고, 집 욕조에 바닷물을 절반쯤 받아 핵융합 연료를 추출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것으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석탄 40톤에 해당하는 전기, 즉 한 사람이 50년 동안 쓸 전기가 나옵니다.
연료가 되는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으니, 사실상 바닷물로 전기를 만드는 셈입니다. 이 계산을 확인한 과학자들은 결심하게 됩니다. 지구에 태양을 만들겠다고요. 다만 우리가 만드는 인공태양은 중심 온도 약 1,500만 도인 진짜 태양보다 훨씬 뜨거운 1억 도가 넘어야 합니다.
1억 도의 태양을 어떻게 가둘 것인가 — 토카막의 탄생
여기서 과학자들을 가장 괴롭힌 질문이 등장합니다. 1억 도짜리 태양을 도대체 어디에 담을 것인가. 그냥 두면 모든 것을 녹이며 땅속으로 꺼져버릴 테니까요.
나용수 교수님은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들려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호수를 발견한 우주 탐사대가 그 액체를 지구로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울대 학생들은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고도 답에 닿지 못하는데, 초등학생들은 "왜 땅은 안 녹았어요? 그 땅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퍼가면 되잖아요"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많은 지식이 오히려 편견이 되어 본질을 가리는 것입니다. 몰입적 사고란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질문 자체와 대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되돌려보면 이렇게 됩니다. 태양은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답은 중력이었습니다. 뜨거운 입자들이 흩어지려는 것을 태양의 거대한 중력이 붙잡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구에서는 중력 대신 무엇으로 가둘 수 있을까요.
열쇠는 플라즈마의 성질에 있었습니다. 고체, 액체, 기체 다음의 네 번째 상태인 플라즈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되어 돌아다니는 상태로, 태양이 바로 이 상태입니다. 플라즈마 입자는 자기장을 만나면 자기력선을 따라 빙글빙글 돌며 갇히는 성질이 있습니다. 처음 만든 원통형 장치는 양쪽 끝으로 입자가 새어 나갔고, 이 문제를 붙들고 몰입하던 과학자들은 마침내 "양쪽 끝을 연결하면 어떨까"라는 발상에 도달합니다. 그렇게 1952년 러시아의 탐과 사하로프가 고안한 것이 도넛 모양의 자기장 가둠 장치, 토카막입니다. 전기를 얻는 원리는 의외로 친숙합니다. 쏟아지는 고에너지 중성자를 '블랭킷'이라는 담요로 받아내고, 그 열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것입니다.
1억 도로 가열하는 법, 그리고 남은 과제들
가두는 문제를 풀었다면 다음 질문은 가열입니다. 강연에서는 세 가지 방법이 소개됐습니다. 전기장판처럼 전류의 저항으로 열을 내는 옴 가열, 가속기로 고에너지 입자를 쏘아 충돌시키는 방법, 그리고 전자레인지처럼 입자의 고유 진동수에 파동을 맞춰 에너지를 전달하는 공명 가열입니다. 실제로 서울대 연구팀은 마트에서 사 온 전자레인지를 분해해 토카막에 붙여 온도를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몰입이 필요한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커피를 저으면 빨리 식듯 플라즈마 내부의 난류가 온도를 떨어뜨리는 문제, 태양이 번쩍이며 벽을 때리는 불안정성, 중성자가 재료를 손상시키는 문제까지. 교수님은 "지금의 방식이 정답이 아닐 수 있으며, 여러분이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몰입이 만든 발견 — KSTAR 세계 신기록과 FIRE 모드
이번 강연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나용수 교수님 본인의 몰입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의 인공태양 KSTAR에서 진행한 실험이 의도한 결과를 내지 못해 실패로 여기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 온도가 이상해요"라며 데이터를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KSTAR에서 나온 적 없던 1억 도가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몰입의 시작점
왜 여기서 1억 도가 나왔을까. 이 질문을 붙든 순간부터 교수님은 저도 모르게 몰입 상태에 들어갔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꿈속에서도 그 현상을 고민하게 되는, 평소 저희 몰입아카데미 황농문 교수와도 자주 교류하며 나누던 바로 그 몰입이었습니다.
그 끝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물리 현상으로 1억 도가 만들어졌음을 규명했고, 'FIRE 모드'라는 이름을 붙여 네이처에 발표했으며 국가 우수 성과 100선에도 선정됐습니다. KSTAR는 이후 1억 도를 48초간 유지하는 세계 신기록까지 세웠습니다. 교수님은 이를 "몰입으로 얻은 가장 좋았던 성과"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실패한 실험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상 신호에 질문을 던진 것, 그리고 그 질문을 답이 나올 때까지 놓지 않은 것. 몰입 이론이 말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의 전형이 여기에 있습니다.
핵융합 상용화는 언제쯤 — ITER, 스타트업, 5차 산업혁명
현재 프랑스 남부에는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 ITER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약 10조 원 규모에 우리나라도 약 1조 원을 분담하는, 핵융합 상용화로 가는 길목의 실험로입니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민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샘 올트먼,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같은 인물들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여러 기업이 2028년에서 2030년대 상용화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50년대였던 목표를 앞당겨 2030년대 전기 생산 실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래 세계를 바꿀 단 하나의 기술로 핵융합을 꼽았습니다
-스티븐 호킹 -
나용수 교수님은 AI 혁명이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핵융합이 감당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5차 산업혁명의 문을 열 것이라고 전망하셨습니다.
강연을 관통하는 메시지
이 강연은 핵융합 기술 소개이면서 동시에 몰입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을 따다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현실이 된 과정에는 늘 같은 패턴이 있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질문을 붙들고 계속 고민하는 개인의 몰입, 그리고 토론으로 생각을 잇는 집단의 몰입입니다. 지식이 많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내려놓고 질문과 정면으로 대면할 때 답이 열린다는 것, 이것이 강연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지금 시작하는 몰입 실천 3단계
📌 핵심 요약
✓ 1단계 — 풀고 싶은 질문 하나를 정하세요
"태양은 왜 뜨거울까"처럼 크기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궁금한 질문 하나를 고르세요. 공부나 업무에서 막힌 문제도 좋습니다. 몰입은 언제나 명확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 2단계 — 아는 지식을 내려놓고 질문과 대면하세요
초등학생의 눈으로 "이건 원래 어떻게 존재하지?"라고 처음부터 다시 물어보세요. 기존 지식으로 서둘러 답을 내리는 대신 편견 없이 본질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 3단계 — 답이 나올 때까지 생각을 이어가세요
산책할 때도, 잠들기 전에도 그 질문을 놓지 말고 천천히 생각을 이어가세요. 혼자 막히면 나용수 교수님의 연구팀처럼 동료와 토론하며 생각을 확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몰입아카데미에서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깊은 사고력을 구조적으로 설계해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몰입 훈련이 궁금하다면 몰입아카데미 프로그램 알아보기를 참고해보세요.
핵융합처럼 거대한 문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공부, 내 일의 문제 하나에 몰입하는 경험이 쌓일 때 사고의 근력이 자랍니다. 저희 몰입아카데미는 진단, 훈련, 피드백의 과정으로 그 경험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핵융합 발전과 원자력 발전은 무엇이 다른가요?
A. 원자력(핵분열)은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자핵을 쪼갤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핵융합은 수소처럼 가벼운 원자핵을 합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방식이 바로 핵융합이며, 연료를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입니다.Q. 인공태양이 폭발하거나 사고가 날 위험은 없나요?
A. 강연 내용에 따르면 토카막은 구조적으로 안전한 장치입니다. 내부는 우주보다 강한 진공 상태여서 벽에 구멍이 나면 바깥 공기가 밀려 들어오며 찬물을 끼얹듯 플라즈마가 식어버립니다. 영화와 달리 폭발이 아니라 꺼지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Q. 핵융합 발전은 언제쯤 실제로 쓸 수 있나요?
A. 국제 공동 프로젝트 ITER가 2030년대 중반 본격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여러 민간 스타트업은 2028년에서 2030년대 상용화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30년대 전기 생산 실증으로 계획을 앞당기고 있습니다.Q. 과학자가 아니어도 몰입적 사고를 배울 수 있나요?
A. 물론입니다. 강연에서 보듯 몰입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질문을 붙들고 생각을 이어가는 훈련의 결과입니다. 몰입아카데미에서는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누구나 몰입적 사고를 익힐 수 있도록 진단부터 훈련, 피드백까지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보기
나용수 교수님이 직접 강연한 몰입초대석 영상은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한마디
나용수 교수님의 강연을 정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려한 첨단 장치가 아니라, 실패한 실험 앞에서 던져진 한마디였습니다. "교수님, 온도가 이상해요"라는 학생의 말을 흘려보내지 않은 순간 세계적인 발견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잠들지 못하고 꿈속에서도 이어진 그 고민의 시간을 교수님은 —몰입으로 얻은 가장 좋았던 성과— 라고 담담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답은 종종 예상 밖의 신호 속에 숨어 있고, 그것을 알아보는 힘은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친 '이상한 신호'는 무엇이었을지, 이 강연이 조용히 묻는 듯합니다.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이 태양을 만든다